정보기관의 대선개입 : 97년 총풍의 3가지 의혹

2013. 8. 20. 12:57news/사회

정보기관의 대선개입 : 97년 총풍의 3가지 의혹
2013.08.20 12:15 입력

 

한국정보기관은 주요 선거 때마다 수많은 공작 정치를 해왔다. 알려진 것만 하더라도 1971년 대선 당시 실행했던 “풍년사업”, 1987년 대선 당시 “상록사업”, “무지개공작” 등이 있다. 정보기관의 공작 중 1997년에 있었던 총풍 사건은 다른 공작과는 달리 비교적 빠르게 사건의 실체가 일부 드러나, 총풍사건의 관련된 인물이 처벌을 받았다. 1997년의 총풍사건은 안보문제를 선거에 끌어들인 대표적인 사례로, 그 이전에도 대통령 선거 때마다 여당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분단된 남북관계를 악용했다는 의구심이 있었는데, 97년 총풍을 계기로 정보기관의 대선개입 혐의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러나 1997년의 총풍사건도 정보기관 공작의 실체가 온전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총풍사건이란?

 

 

총풍사건은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 직전에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정보기관이 개입한 정치공작이다. 당시 청와대 행정관 오정은, 대북사업가 장석중, 진로그룹 고문 한성기는 15대 대통령 선거 직전인 1997년 12월 10일, 베이징에서 북한의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박충 참사를 만나 북한에게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사건을 보도한 1998년 10월 1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검찰은 이들이 북한 측 인사를 만나 자신들을 ‘한나라당 이회창후보 비밀정책 특보’라고 소개하고 “북한 측이 총격전을 벌여주는 대가로 이후보가 당선되면 비료 등 북한 측이 원하는 물자를 보내주는 등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은 오정은, 장석중, 한성기가 북한의 박충 참사를 만나 휴전선에서 총격을 요청한 사실은 있으나 이들이 사전의 모의하거나 배후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라고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위 3명이 북한 인사와 접촉한 사실을 알고도 수사 지시를 내리지 않은 안기부장 권영해에게는 무죄를 선고하고, 한나라당과의 연계와 관련하여 더 이상의 조사 없이 판결을 종결지으면서 몸통은 빠지고 깃털만 처벌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의혹 1 : 우발적으로 총격을 요청?

 

 법원은 이 사건이 배후나 사전 모의 없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라고 규정하였으나 오정은, 장석중, 한성기 세 사람을 살펴보면 한나라당, 안기부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로서 배후가 없다고 보기 어렵다.

 

청와대 오정은 국장은 이후 국회의장까지 지낸 당시 한나라당 박관용 의원의 조카이다. 2003년 3월 15일자 <오마이뉴스> 기사에 따르면 오정은은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한 비밀조직을 만들어 한성기와 함께 18회에 걸쳐 '대선전략보고서'를 이 후보에게 직접 전달해왔다고 한다. 또한 대북사업가 장석중은 안기부의 정보원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장석중은 대북 사업을 하면서 취득한 정보를 안기부에 보고해왔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친한 오정은 국장에게도 정보를 제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성기는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인 이회창의 동생 이회성과 가까운 사이였다. 한성기는 이회성의 주선으로 오정은 국장과 함께 이회창 후보에게 '대선전략보고서'를 전달해왔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작성한 박찬종 의원 동향 보고서 4건을 직접 이 후보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한성기는 한나라당 박찬종 고문이 탈당해 이인제 후보측에 합류할 움직임을 보이자 이회창 후보가 박고문을 만나 담판할 수 있도록 이 후보와 함께 이 후보의 승용차를 타고 박 고문 자택까지 안내한 인물이기도 했다.

 

이들은 한나라당과 안기부 몇몇을 알고 있는 단순한 관계자가 아니라 내부측근들이었다. 법원에서는 장석중과 한성기의 경우 사업가이므로 중국에 사업하러 갔다는 식으로 판단을 내렸으나 이회창 후보 당선을 위한 비선 참모조직의 일원인 청와대 행정관 오정은이 왜 중국에 갔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총풍사건이 자신들과 관련이 없는 사건이고 당시 총재로 복귀한 “이회창 죽이기”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무려 4차례나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하는 등 총풍사건의 범인들을 비호했다. 특히 오정은과 장석중을 보호하는데 치중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반발하여 한성기는 한나라당이 오정은, 장석중을 살리기 위해 “한성기 죽이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수사도중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고백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의혹 2: 안기부는 관여하지 않았다?

 

 오정은, 장석중, 한성기가 북한 측 인사와 접촉한 날짜는 1997년 12월 10일이었다. 권영해 당시 안기부장은 바로 다음 날인 12월 11일, 이들의 총격공작에 대한 첩보보고를 받았다. 권영해 안기부장이 이 사건과 관련하여 최초로 보고받은 안기부 보고서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1998년 10월 27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권영해 안기부장은 “이회창 후보 특보인 한성기씨가 이 후보의 지원을 위해 북쪽이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일으키거나 김대중 후보의 친북활동 자료를 제공해주면 98년 2월까지 북한에 식량과 비료 등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는 매우 구체적인 내용을 보고 받았다. 이것은 안기부가 이들의 행동을 실시간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첩보를 받은 안기부는 12월 12일, 귀국한 한성기를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한성기가 “이회창 후보 특보 명함”과 “대선전략보고서”를 가지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으나 권영해는 이와 관련한 별도의 수사 지시를 하지 않았다. 권영해 안기부장은 오경은, 장석중, 한성기가 불법을 저지르고 심지어 ‘무력시위’를 사주한 사실까지 알고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는 대선 기간 있었던 불법행위를 덮어준 것으로 사실상 이를 방조한 것이나 다름없다.

 

 


의혹 3 : 깃털 처벌에 그친 수사

 

총풍사건은 여러 정황상 97년 당시 안기부가 직, 간접적으로 관여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고 이회창 캠프도 관여되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검경의 수사가 부실하여 진실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당시 총풍사건의 몸통으로 한나라당 박관용, 이회창 후보의 동생 이회성이 거론되었으나 검찰과 법원은 총풍사건과 박관용, 이회성의 연관성을 밝히는데 이르지 못하였다. 1998년 10월 22일자 <시사저널>에 따르면 박관용 의원은 조카인 오정은을 이용하여 장석중을 정보원으로 하는 대북 비선 라인을 운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총풍사건에 관여가 되었을 것이라는 의혹이 있었으나 부실한 검찰 수사로 인해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회성도 한성기에게 총풍사건과 관련하여 전화통화를 한 사실과 500만원을 건넨 사실이 보도되었으나 더 이상 밝혀내지 못했다.

 

검찰은 총풍사건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는데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1998년 11월 5일자 <한겨레21>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는 “검찰에 감청자료 등 상당한 단서를 제공했는데도 검찰이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검찰은 오정은 전 행정관이 검찰에 송치되기 전에 “한성기가 북한을 대선에 이용하는 카드를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베이징에 가겠다고 했을 때 놀랐고 무모하고 위험한 발상이라고 이야기했으면서도 강하게 저지하지 못했고 스스로 모의에서 과감히 빠지지도 못했다”라고 작성한 반성문까지 확보하였으면서도 이를 적절하게 활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검찰이 제시한 증거들은 법원에 의해 인정받지 못하면서 결국 총풍사건은 이도저도 아닌 사건으로 되고 말았다. 2001년 4월 17일자 <한국일보>에 따르면 총풍사건의 공소유지를 담당한 이영만 검사는 “재판부가 최대 쟁점인 무력시위 모의 여부에 대해 총풍 3인방간의 전화통화 기록, 메모지 등 수많은 검찰 자료를 배척한 채 오정은, 장석중씨의 일방적인 부인(否認) 진술에 의존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 검사는 구체적인 증거로 수사기관인 국정원과 검찰은 물론 법정에서도 일관되게 모의사실을 시인한 한성기씨의 자백, 오정은씨와의 국제전화 통화내역서, 당시 이회창 후보측에 전달한 '특단 카드 협상 정보보고서'등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판결을 내리면서 증거들은 무시하고 오정은, 장석중의 진술에만 의존했다고 주장했다.

 

 


정보기관의 대선공작 사건, 확실히 밝혀야

 

한국의 정보기관은 예로부터 선거시기만 되면 불법 선거개입을 시도해왔다. 2012년 치러진 대선도 국정원이 새누리당과 연관되어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 경찰 지도부가 수사를 왜곡하고 축소하여 이 사건 자체를 묻어버리려고 하는 시도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번 국정원의 불법 대선공작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고 국정원을 해체시키지 못하면 앞으로도 비슷한 사건은 계속될 것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진상을 반드시 철저하게 규명하고 국정원을 해체해야 한다. 또한 97년 총풍사건과 같은 정보기관의 선거개입 혐의를 낱낱이 밝혀 결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과거를 철저하게 청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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