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국정원 국정조사' 소매치기 대작전

2013. 8. 20. 17:34정치사회/한국진보연대

 [칼럼]'국정원 국정조사' 소매치기 대작전


'국정원 국정조사' 소매치기 대작전 

장대현(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암세포 도려내는 수술이 ‘암에 대한 불복’인가? 

소매치기의 두 가지 특징 

 소매치기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사장(총책), 기계(직접 금품을 빼는 기술자), 바람(옆에서 분위기 잡는 사람), 안테나(망보는 사람) 등 다수가 은밀하게 공조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사람의 시선이나 집중력을 가리는 각종 수법을 자유자재로 구사, 눈 뜬 사람 코를 베어가되 피해자 모르게 한다는 것 등이다. 

지난 대선 기간, 국정원이 야당후보 낙선을 위한 정치공작을 했고, 경찰 지휘부가 나서서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사실이 검찰의 수사결과를 통해 온 세상에 드러나면서, 또한 새누리당이 정상회담 회의록을 대선 전에 불법 입수, 선거에 악용했다는 의혹이 김무성 의원의 발언 등으로 고개를 쳐들면서 국민의 실망과 분노가 촛불로 옮겨 붙자, 정부와 여당은 7월 1일 ‘국정원 댓글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수용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보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조사기간의 1/3이 아깝게 지나버린 이 시각까지도 국정조사는 까맣게 실종되었다. 나아가 ‘까맣게 실종된’ 그 사실까지도 새까맣게 실종되었다.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잃어버렸다는 점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것일까? 지난 보름,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청와대의 지침 

이번에도 시작은 역시 청와대였다. “2주간 침묵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8일 국내 정치 현안에 대해 ‘작심 발언’을 쏟아내면서 그 배경과 의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확산되면서 대선의 정통성으로까지 불씨가 번지는 데 대한 선제적 진화작업이란 해석이 먼저 나온다. 이후 국면에 대비해 새누리당 등에 내리는 ‘가이드 라인’ 성격도 읽힌다.”(프레시안 7월 8일 인용) 

맞다.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의 진상을 규명”하고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 등 국정원을 전면 개혁하라”는 주말 촛불이 1만여 명으로 크게 늘어난 바로 그 다음 월요일(7월 8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민의 요구에 간접적으로 대답하는 동시, 거기에 대한 내부 대응지침을 공개 하달했다. 그것은 먼저, ‘진상규명’에 관한 것이다. 

“대선이 끝난 지 6개월이 지났다. 그런데도 대선 과정에 문제가 됐던 국정원 댓글과 NLL 관련 의혹으로 여전히 혼란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어서 유감이다.” 

이 발언에는 세 가지 지침이 담겨 있다. 첫째 여전히 “국정원 댓글 의혹”이라 지칭함으로써 국정원의 정치공작과 대선개입을 일체 부정한다는 것, 둘째 “국정원 댓글과 NLL관련 의혹으로”라며 두 사건을 이어 붙임으로써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포기”를 “국정원 댓글” 희석용으로 계속 사용한다는 것, 셋째 “대선 과정에 문제가 됐던” 것을 “국정원 댓글과 NLL 관련 의혹”으로 한정함으로써 김무성 의원의 발언 등으로 드러난 ‘정상회담 대화록 사전유출과 대선 악용 사건’은 아예 ‘의혹’에서 조차 제외, 진상규명 대상에서 삭제한다는 지침이다. 

다음, 그는 ‘국정원 개혁’을 말한다. “국정원은 개혁안을 스스로 마련해 주기 바란다”가 바로 그것. 즉, “국정원 개혁 불가!”다. 지난 대선에서 “야당후보 낙선에 영향을 끼치는” 등 불법적인 정치공작을 자행하고, 국정원 개혁의 거대한 민심에 직면하자 국회 2/3의 동의를 얻어야만 공개 가능한 정상회담 회의록을 무단 공개하는 등 민주주의를 뿌리 채 뽑아들고 마구 흔드는 그 국정원에게 잔뜩 힘을 실어준 것이다. 

다수의 은밀한 공조 

“당.정.청(黨政靑) 핵심 고위 인사 9명이 참석하는 '9인 회의'가 지난 9일 밤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것으로 10일 알려졌다... 민주당이 최근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을 이유로 공개적으로 ‘선거무효투쟁’ 등을 거론하고 문재인 의원이 “작년 대선이 불공정하게 치러졌다”며 대통령의 해명을 요구한 일도 거론됐다.”(조선일보 7월 11일 인용) “일명 ‘국정 콘트롤타워 9인방’의 9일 회동 직후, 10일 국정원 대변인의 이례적 성명, 11일 국방부 대변인의 브리핑이 이어지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부여당이 국정원 국정조사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꾸 NLL논쟁을 촉발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돌았습니다.”(오마이뉴스 7월 11일 인용) 기계와 바람, 안테나가 만났으니 또 누구의 코가 소리도 없이 사라질 것인가. 

각종 수법 1 – 시선을 돌려라 

소매치기 수법 중 ‘굴레 따기’라는 게 있다. 일부러 동전을 떨어뜨린 다음 그것을 줍기 위해 몸을 숙이는 순간, 피해자의 목걸이 등을 끊어 가는 기술이다. 국정원 국정조사를 훔치기 위해 저들이 던진 동전은 과연 무엇일까? 

“감사원이 10일 발표한 4대강 입찰 비리 감사 결과의 핵심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사업이 향후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재추진을 위한 사전 작업의 성격이 크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홍수 예방, 수량 확보라는 4대강 사업의 기본 취지를 감안할 때, 이명박 정부가 필요 이상으로 강바닥을 깊이 팠고 보(洑)도 많이 설치했다고 봤다.”(조선일보 7월 11일 인용). 

감사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형틀에 묶자, 청와대가 즉각 곤장을 내려 갈긴다. “청와대는 10일 4대강사업이 사실상 대운하였다는 감사원 발표와 관련, ‘사실이라면 국민을 속인 것이고 국가에 엄청난 손해를 입힌 큰 일’이라고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박근혜 대통령 ‘입’인 이정현 홍보수석은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감사원 감사결과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실명으로 이같이 말했다.”(뷰스앤뉴스 7월 10일 인용) 

찰떡궁합은 아니었어도 ‘이명박근혜’라는 비아냥을 감수하면서까지 대선공조를 유지, 정권연장의 공동목표를 이룬 그 둘이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광경은 과연 흥미롭다. 하여 “박 대통령, 이명박 공격하며 차별화” 또는 “검찰 수사, 이명박 겨누나?” 등 언론이 비추는 그곳을 따라 사람들의 시선은 저절로 꽂혔다. 

또 있다. “국정원은 1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강변하고, 개혁은 남재준 원장 중심으로 자체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내용의 공식 성명을 내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른바 ‘셀프 개혁’을 요구한 지 이틀 만에 나온 국정원의 이런 행동은 국회와 여야 정당의 대화록 공개 파장 수습 노력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한겨레신문 7월 11일 인용). 

정상회담 회의록 무단 공개에 이은 2차 도발이면서, 그것보다 더욱 심각한 행각이다. 회의록 원본을 열람, 지루한 진위 공방을 해결해 나가기로 여야가 합의한 바로 그 직후 “NLL포기가 맞다”고 들이댔으니,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야 가릴 것 없이 남산에 끌고 가 고문하고, 결국 자기들의 의사를 관철시키던 그 시절의 그 발상과 그 기개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회의록 공개가 정치권에 대한 반항 수준이라면 이번에는 정치권을 통제하겠다는 까닭이다. 놀라움 반, 두려움 반으로, 다시 사람들은 국정원에 눈길을 빼앗겼다. 

각종 수법 2 – 머리에 껌을 붙여라 

소매치기 기술에 ‘껌 치기’라는 것도 있다. 점찍은 상대의 머리에 슬쩍 껌을 붙이거나 옷에 뜨거운 커피를 쏟는 등으로 강력한 자극을 주어 집중력을 떨어뜨린 후 그 틈을 이용, 금품을 빼내는 수법이다. 국정원 국정조사를 우리 곁에서 ‘슬쩍 해 갈’ 목적으로 저들이 우리에게 붙이거나 쏟은 것은 무엇일까? 

“민주당의 홍익표 의원이 처음 현안 브리핑을 통해 귀태 발언을 한 것은 11일 오전 10시 20분이었다. 하지만 이날 하루 종일 청와대의 대응은 미지근했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다음 날인 12일 아침 8시 20분에야 ‘폭언이고 망언’이라며 ‘민주당은 국민과 대통령께 정중히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평소 아침 7시쯤 기자실에 들러 간담회 형식으로 현안을 짚어주는 이 수석이 1시간 이상 늦게 나타나서 공식 브리핑을 연 만큼, '대통령의 지시를 받았다'는 인상이 확연했다.”(조선일보 7월 15일 인용). 

“하지만 홍 원내대변인의 발언에 대해 새누리당이 보인 반응은 시차가 있었고, 청와대의 반응 강도에 따라 큰 변화를 보였다. 전날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귀태 발언에 대해 ‘민주당이 그간 보였던 대선 불복의 일환’이라며 가볍게 치부했다. 김태흠 원내대변인도 “사과하라”는 수준에서 대응했다. 이마저도 기자들이 먼저 전화로 새누리당 입장을 물어본 뒤에야 나왔다. 그러나 이날 이 홍보수석이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홍 원내대변인에게 대국민 사과를 공식 요구하자 새누리당도 곧 이어 ‘전 일정 보이콧’이라는 강수를 냈다.”(국민일보 7월 13일 인용). 

발언 당일의 청와대, 여당 등의 반응이 입증하는 것처럼 민주당 원내 대변인의 이른바 ‘귀태’ 발언은 여야 간 일상적인 ‘말싸움’에 불과했다. 그러나 정부는, 아니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박 대통령은 그것을 패륜 수준의 막말로 부풀렸고, 원내 대변인의 사퇴와 야당대표의 사과를 요구하며 국회 일정 전면 중단으로 연결시켰다. 민주당의 머리에 껌을 붙여, 그것 떼느라 국정조사에 집중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국정조사 즉각 실시를 바라는 국민들에게 뜨거운 커피를 쏟아부어 집중력을 떨어뜨린 것이다. 

원내대변인 사퇴, 대표 사과 등 엄청난 낭비를 하며 민주당이 간신히 껌을 떼자, 저들은 신이 났다. “박 대통령은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앞으로 잘못된 말로 국민통합과 화합을 저해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고, 서로 상생하고 품격 높은 정치 시대를 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의 ‘귀태’ 발언에 이어, 14일 이해찬 의원이 ‘박정희가 누구이고 누구한테 죽었나’라고 한 발언을 겨냥한 것이다.”(한겨레신문 7월 16일 인용) 

대통령이 슬쩍 걸치자, 이정현 홍보수석이 그것을 아예 짓이겨 붙인다. “이 수석은 ‘당 지도부가 함께 참석한 행사에서 (이 고문이) 대선 무효를 주장하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에게 ‘당신’이라고 운운하고 있다’며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사퇴도 했고,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사과도 했는데 그게 오래 전 일이었나. 불복이면 불복이라고 분명하게 대선에 대한 입장을 이야기하라’고 말했다.”(오마이뉴스 7월 16일 인용) 

국정원이 일으킨 지금의 이 쿠데타적 상황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암세포가 바로 국정원임을, 지금 당장 그것을 말끔히 도려내지 않으면 암세포가 우리 민주주의를 죽음에 이르게 할 것임을 진단해 준다. 진상규명과 국정원 전면개혁,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이 모든 사태를 여기까지 악화시킨 대통령의 책임 있는 사과 등은 암세포를 도려내는 수술, 우리 민주주의를 살리는 시술이다. 암 세포 도려내는 수술을 하자는데 그것을 “암에 대한 불복”이라고 우긴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정녕 죽이자는 말인가? 그럴 수는 없어, 이번 주말에도 금요일 저녁 7시 서울광장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촛불은 타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