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까지의 언론 보도를 보면, 메르스는 아직도 확산 중인 것 같다. 국민 건강의 위기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는 당장의 과제 뒤편으로 의료시스템에 대한 정책적 논란이 보인다. 공공의료냐 원격진료냐.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대안적 정책을 모색하는 민간단체 활동을 하면서 가장 어려울 때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둘러싸고 논쟁할 때이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상대는 "돈을 벌어다 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전망의 반대편에 서 있을 때는 귀 기울이는 사람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내가 활동하는 정보인권 분야는 늘 그래왔다. 종종 정보기술의 확산이 경제적 부, 특히 국가경쟁력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의 반대편에 서 있게 된다. 잠재적인 인권침해 가능성을 제시하는 목소리는 "아주아주 먼 미래"이거나 "거의 오지 않을 미래"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십여 년 동안 활동하다 보니 비극적이게도 그 미래가 성큼 와버린 것을 보게 된다.
2003년 정부가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겠다고 처음 밝혔을 때, 대중사회와 언론은 혐오스런 인터넷 악플이 일소되길 기대했다. 그 이면에는 실명 확인을 비롯한 인증 기술의 경제성, 신뢰성 있는 개인정보를 토대로 창출할 부가가치에 대한 기대 역시 자리잡고 있었다. 더 깊은 속내에는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행적을 언제나 한눈에 조망할 수 있길 바라는 정보수사기관들의 욕망이 있다. 당시 민간단체들이 주민번호 유출과 국가 감시가 횡행할 것이라고 경고했으나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었다.
2012년 8월 헌법재판소가 인정했듯이 악플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인터넷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민낯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익명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헌재 결정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서 거의 강제적인 신원확인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예고했던 주민번호 대량유출 사고는 정말로 일어났다. 2008년에는 1천8백만 건(옥션)이었으나, 2011년에는 3천5백만 건(SK컴즈)이었고, 2013년에는 1억 4백만 건(KB국민·롯데·NH농협카드)으로 계속 대규모화하였다. 개인정보를 보호하라는 국민적 비판이 비등하자 정부와 국회는 하나 둘씩 개인정보 보호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카드정보 유출에 대한 국회 공청회들은 의욕이 없었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에 주목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이동통신 본인확인 의무화 법안이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라는 명분으로 국회를 통과하였다.
그 결과 지금 인터넷 여기저기에서는 주민번호 대신 휴대전화번호로 본인을 확인하는 일이 횡행하고 있다. 이동통신사를 비롯한 본인확인기관들은 국가가 인증한 본인확인업으로 부를 창출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우리에게는 빅데이터 시대 정확한 표적이 될 일만 남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국민을 보호해야 할 정부는 창조경제와 빅데이터 산업을 활성화하려는 생각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금융위원회는 그나마 존재하는 개인정보 보호법을 우회하기 위해 '비식별화'라는 듣도보도 못한 개념을 만들어냈다. 정부를 견제해야 할 국회에서는 강은희, 강길부, 부좌현 의원이 정부의 아이디어를 법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것이 카드3사 개인정보 유출 사고 후 1년 반이 지나간 현재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미래로 가고 있는 것일까? 6월 국회가 정보인권을 선택해주길 간절한 마음으로 요청한다.주민번호 상황은 어떨까? 박근혜 대통령과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대표까지 나서 촉구했던 "주민번호 대책"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정부에서 공청회를 열어 주민번호 전면개편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대책은 흐지부지 사라졌다. 유출된 주민번호로 평생 반복적인 피해를 입게된 국민들로서는 주민번호 변경이 절실하지만, 그에 대한 정부 법안은 생색내기에 그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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