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20. 12:53ㆍnews/사회
- 박근혜 대통령 취임 6개월 만에 드러난 ‘수구본색’
- 공안세력 전진배치 정국돌파 시도… 속속 이어지는 유신기구 부활
- 2013.08.20 11:47 입력
오는 25일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6개월을 맞는다. 취임 6개월 만에 박근혜 정부는 ‘수구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통합진보당은 ‘유신독재 부활’을 경고했다. 그 우려대로 박 대통령은 유신의 망령을 하나씩 불러내고 있다.
김기춘의 등장, 부활하는 유신
박 대통령은 국정원 대선개입과 관련해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요구가 들불처럼 번지던 상황에서 휴가를 다녀왔다. 휴가를 끝내고 복귀한 박 대통령의 첫 메시지는 지난 5일 김기춘 비서실장을 임명한 것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공안검사와 중앙정보부 출신으로 유신헌법의 기초를 만든 인물이다. 아울러 지난 1992년 대선엔 법무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지역감정을 조장해 대선에 불법 개입하려 했던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을 일으켰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김기춘 비서실장 기용에 대해 지난 5일 “대통령 비서실장에 김기춘, 초원복집 사건으로 ‘우리가 남이가’ 지역감정 일으켜 김영삼 당선시킨 사람을 권력핵심으로. 박근혜 정부가 낡은 정치의 유산임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대표는 이어 “김기춘 비서실장은 5·16 장학회의 첫 수혜자이자 유신헌법의 초안자,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장”이라며 “박근혜 정권은 말 그대로 유신의 부활“이라고 꼬집었다.
김기춘 비서실장 기용은 박 대통령의 향후 정국 운영 방향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민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울러 국정원 대선개입과 관련해 아무런 책임지지 않겠다는 차원을 넘어 공안 세력을 전진배치해 정국을 돌파하겠단 의도가 엿보인다. 박 대통령은 김기춘 비서실장과 함께 홍경식 전 서울고검장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했다. 이로써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 법무장관까지 공안검사 출신으로 채워졌다. 이밖에 친박계 의원 가운데 하나인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계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검찰은 사이버 명예훼손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행보가 심상치 않다.
15년 만에 부활한 국방정신전력원
유신시절 기구들도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김관진 국장부 장관은 지난 9일 육·해·공군 참모총장이 참석한 군무회의에서 올해 12월까지 유신시절 만들어진 군 장병 정신교육 기관인 국방정신전력원을 부활시키기로 했다. 군 장병 정신교육기관은 박정희 정부 시절이던 지난 1977년 만들어져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지난 1998년 폐지됐다. 박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15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국방정신전력원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하게 될 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국방부는 지난 4월부터 2014년 개원을 목표로 국방정신전력원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박 대통령에 보고한 바 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꾸준히 정신교육 강화 필요성이 제기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국방부는 이미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 대북 적개심 고취에 앞장 선 바 있다. 이후 군대엔 ‘목을 따자’, ‘부관참시’ 등 70년대식 호전 구호가 난무했다. ‘2010국방백서’엔 “장병들의 확고한 대적관 확립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표기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2011년 신년사에서 “대적관, 자유민주주의 우월성, 역사관 등 지휘관 중심의 정신교육을 한층 강화해 우리가 왜 싸워야 하며 이 나라를 지켜야 하는지를 모든 장병들에게 명확히 인식시켜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전투중심 정신교육을 강화하겠다며 각 부대에 대적관 표어·포스터·슬로건 등을 설치토록 했다. 또 점호나 단체활동 때 대적 필승구호를 제창토록 하고 전투사격 표적지나 각개전투 표적을 적 형상으로 바꾸도록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노골화되는 친재벌 정책
유신시절 기구의 부활은 경제분야에서도 이어졌다. 박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들었던 ‘수출진흥확대회의’를 34년 만에 부활시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수출진흥확대회의를 1965년부터 수출확대와 지원을 명목으로 1979년까지 매달 진행했다. 수출확대를 명목으로 진행된 이 회의는 이후 재벌대기업의 성장, 정경유착을 낳는 고리가 됐다. 지난 5월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 1차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기업의 애로사항과 바람 등 현장의 목소리도 듣고 같이 문제를 풀면서 뒷받침해 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투자확대를 위해 기업의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언급한 것이다. 지난 시절 수출진흥확대회의가 그러했듯 무역투자진흥회의가 나갈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발언이다.
이런 박 대통령의 구상에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힘을 실었다. 현오석 부총리가 지난달 31일 ‘1박 2일 경제현장 방문’의 일환으로 전북 군산시 새만금 열병합발전소 용지를 찾아 민간 투자자를 직접 등에 업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인 지난 1일 울산 온산산업단지를 방문한 자리에선 “기업의 노력에 지장을 초래하는 어떤 불법적 행동도 용납하지 않겠다”며 “노사관계에 있어 불법적 행위에 대해선 단호하게 법질서를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 부총리의 이런 행보는 박 대통령의 이후 경제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경제부총리도 1964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시작된 직제를 부활시킨 것이다.
친재벌·친기업 정책이 노골화되면서 후보시절 공약했던 경제민주화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노인들의 몰표를 이끌어냈던 노인연금은 후퇴하고 말았다. △감사위원 선출시 최대주주 의결권 3%로 제한 △집중투표제·전자투표제 단계적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도 재벌기업의 압력으로 후퇴 또는 무산 위기에 처했다. 재벌과 고소득층은 내버려둔 채 노동자들의 지갑만 노린 세법개정안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박 대통령 취임 6개월, 공안세력 전진배치, 유신 기구 부활, 친재벌 정책 등 유신의 부활은 이미 완성되고 있는 듯하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흔들리는 권력 기반을 과거의 방식을 동원해 안정화시키고, 나아가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통해 정국 주도권을 잡겠다는 구상도 엿보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다시 유신의 잔재를 들고 나온 건 자신감이라기보다는 정권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유신으로 회귀하느냐’, ‘민주주의를 회복하느냐’는 진짜 싸움은 바로 지금부터다.
권종술 기자 news@goup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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