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5. 23:51ㆍ정치사회
- 국정원 해킹 사건, 민주주의를 난도질하다
해킹(hacking). 컴퓨터 시스템에 침입하는 행위를 뜻하는 이 말은 본래 ‘난도질하다’는 뜻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국가정보기관의 해킹 사건이 뜨거운 모래 폭풍처럼 지난 여름을 휩쓸었지만, 지나갔다. 국정원이 국회에 자료제출을 거부한 가운데 검찰은 뚜렷한 피해가 드러나지 않았다며 수사를 하는둥 마는둥 한다.
국정원에서 밝힌대로 해킹은 모두 적법한 해외 공작과 실험용으로만 사용되었을까. 국내 ‘사찰’은 전혀 없었을까. 그러나 이 해명들이 모두 진실하다 하더라도 국민들은 이미 해킹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우선, 국민의 신뢰가 난도질당했다. 국정원은 휴대전화와 SNS 감청을 못하고 있어 활동에 지장이 많다고 주장해 왔다.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 이후로 이동통신 감청 장비를 모두 파기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회는 국정원을 위한 감청 의무화법을 추진해 왔다. 18대 국회에서는 이한성 의원이, 19대 국회에서는 서상기, 박민식 의원이 차례대로 통신사업자에 감청 장비 구비 의무를 부과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런데 모두 거짓말이었다. 알고 보니 국정원은 국가예산을 들여 이탈리아에서 스마트폰 해킹 기술을 수입해 사용하고 있었다. 밝혀지지 않은 더한 기술을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민주주의도 난도질당했다. 국가정보기관이 국민 위에 군림할 때 민주주의는 뿌리부터 흔들린다. 국가정보기관은 국가 안보를 위해 활동한다는 이유로 수많은 예외를 인정받고 있다. 민주국가에서 국민들 앞에 활동의 비밀을 보장받는 것부터가 예외적이다. 그렇다고 누구에게도 통제받지 않는다면 정보기관은 폭주할 수 밖에 없다. 자기 이해에만 복무하는 정보기관에게는 선출된 국민의 대리자조차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은 대개의 국가들은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의거하여 정보기관을 통제해 왔다. 수사권과 정보활동을 분리하고, 국내와 해외 정보기관을 쪼개어 놓았다. 그런데 우리 국정원은 군사독재정권이 출범시킬때부터 이 모든 기능을 한몸에 보유한 만능 정보기관이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는 이 정보기관은 한국 현대사에서 끊임없이 정치에 개입하고 선거를 유린해 왔다. 그리고 현재도 국정원이 어떤 감시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국회도, 법원도, 이 나라에서는 아무도 모르고 있다.
국민의 마음 속에는 불안의 바이러스가 심어졌다. 확실하게 잡히는 것은 없지만 나도 감시당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함. 불안은 우리를 위축시킨다. 카카오톡 대화가 위축되고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위축된다. 시민 행동을 위축시키고 종내는 그에 대한 생각조차 위축시킬 것이다. 그것이 국정원이 우리 사회에 끼치고 있는 가장 큰 해악이다. 국정원 해킹 사건의 피해자는 우리 국민 모두인 것이다.
돌이켜 보면, 한국 현대사는 늘 국가정보기관의 전횡과 감시로 점철되어 왔다. 그리고 최근의 국가 감시는 디지털 기술과 만나 더욱 악화되었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바에 따르면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모토는 ‘모든 것을 감시'하자는 것이었다. 전 국민의 일거수 일투족과 생각하는 바까지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싶은 정보기관의 음습한 욕망이 디지털 시대에 현실화되었다. 사람들은 인터넷망에 자신의 시시콜콜한 일상과 스쳐지나가는 생각들을 모두 보관하고 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2014년 「디지털 시대 프라이버시권」보고서에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국가 감시가 막강해졌다고 우려하였다.
- 사이버 검열의 시작
정보인권운동에서 ‘디지털’ 국가감시를 인지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이십년 쯤 전으로 기억한다. 1994년부터 한국 인터넷 상용화가 시작되었고, 이 무렵 PC통신을 비롯한 전자게시판을 중심으로 정치담론이 형성되고 있었다. 그때 국가의 시선 또한 디지털 공론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처음에 디지털 공간은 완전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될 것 같았다. 참여자가 비교적 소수여서 ‘네티켓’으로 불리기도 했던 자정적인 규칙이 잘 작동하던 때였다. 초고속인터넷 가입자수가 1천9백만 명에 달하는 2014년에 비해 20년 전 PC통신 가입자수는 300만 명이 채 안되었다. 무엇보다 이 공간에는 ‘행위’가 없었다. 오로지 ‘발언’만으로 존재를 드러내는 가상 공간에 ‘표현의 자유 시장’이 개장한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는 희귀한 경험이 시작되었다. 시민들은 열렬히 참여했다. 87년 민주화, 그리고 문민정부의 등장과 더불어 억눌렸던 정치적 표현 욕구가 폭발하였다. 최초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기 전, 시민들에게 키보드가 주어졌다.
검열은 빠르게 찾아왔다. 영화나 대중가요 음반에 ‘공연윤리위원회’ 표 사전 검열이 아직도 존재하였던 때였다. 디지털 공간에서만 자유를 누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낭만이었다. 하지만 검열 역시 기대와 다른 이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게시판에 글을 올린 이들은 전문적인 영화인이나 음악인, 정치인이 아닌 일반시민들이었다. 인터넷을 검열하겠다는 것은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갑남을녀들,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검열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곧 소동이 일었다.
가장 먼저 노크한 것은 국가보안법이었다. 1993년 경부터 PC통신 동호회 게시판에 공산당선언이나 김일성신년사를 게시한 누리꾼들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고 유죄판결 받는 일들이 발생했다. 이들은 해당 게시물들을 서적이나 언론에서 옮겨 게재하였다고 항변하였으나 공권력은 디지털 공론장에 ‘인쇄물’ 만큼의 자유를 보장할 생각이 없었다. 무엇보다 국가보안법은 예로부터 현재까지 공안당국의 입맛대로 적용되는 만능칼이었다.
선거법도 무딘 칼이 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시기에 이르자 이전 선거시기보다 더 널리 확산된 디지털 공간에서 후보자와 정책에 대한 토론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친구들보다 훨씬 더 확대된 청중을 갖게 된 시민 논객들의 발언력은, 제도 언론 만큼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선거법은 정당·후보자에 대한 시민들의 전자적 발언들을 모조리 ‘선거운동’으로 취급하였다. 2011년 헌법재판소에서 인터넷 선거운동 금지가 위헌이라고 결정할 때까지 옛 선거법과 그 틀에 안주했던 기성 정치인들의 방관 속에 많은 시민들이 ‘사전선거운동’으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디지털 검열체제도 정비되었다. 현재 인터넷 검열자로 비판받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전신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1995년 법정화하였다. 1996년에 PC통신 나우누리에 소재했던 한총련CUG가 서울경찰청에 의해 폐쇄되었다. 전기통신사업법에 규정되어 있던 ‘불온통신의 단속’ 조항은, 정보인권 운동진영이 헌법소원을 제기하여 2002년 위헌 결정을 받을 때까지, 행정부 장관이 정보통신망을 검열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였다.
가장 만만한 명분은 ‘음란물'이었다. 이 ‘뉴미디어’에 대해 잘 모르는 기성세대의 공포감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보도들이 일간지와 TV방송에서 연일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부모 단체 회원은 토론회에 나와 자녀가 사용하는 컴퓨터의 모뎀을 전부 부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터넷의 시대가 오고 있었다. 인터넷 이용자들은 근대 시민 혁명가들처럼 강력하게 표현의 자유를 요구했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 아동 보호를 이유로 인터넷 사업자의 내용 규제 의무를 규정한 ‘통신품위법’(컴퓨터 통신망에서 외설정보 전송 금지)이 위헌결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 누리꾼들도 디지털 국가 검열에 크게 반발하였다. 때마침 1996년이었다. 미국의 통신품위법 위헌 결정과 비슷한 때 우리 헌법재판소도 영화 검열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누리꾼들은 컴퓨터통신망에도 검열이 있으며 사이버 검열은 철폐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누리꾼과 모든 시민들이 당사자인 문제였다. 모든 이들의 미디어를 검열하겠다는 공권력의 욕망은 시대의 변화에 부합하지 않는 낡은 포악질이라고 성토하였다. 행정검열에 대한 꾸준한 문제제기는 인터넷 선거운동 합헌, 불온통신의 단속 위헌 등 역사적 성과로 이어졌다. 2002년 헌법재판소는 ‘불온통신의 단속’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하며, “인터넷은 공중파 방송과 달리 ‘가장 참여적인 시장', ‘표현촉진적인 매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모든 시민들의 미디어를 검열하겠다는 국가 검열의 욕망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형태를 바꾸어 가며 그 지속적인 실현을 부지런히 꾀해 왔다. 2015년 현재 인터넷 행정심의기관은 아직 건재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구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기능을 이어받아 이명박 정부 때 출범하였는데, 출범하자마자 조중동 광고주불매운동 게시물을 모조리 삭제조치하는 것으로 악명을 떨쳤다. 최근에는 공인의 명예훼손에 대해 제3자 신고를 인정하는 규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이버 공간에서 본인에 대한 모독이 도가 지나치다며 국무회의에 대책마련을 지시한 이후 벌어진 일이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 이 기관의 활동이 합헌이라고 보았다. ‘불온통신의 단속’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던 그 기관이 딱 십 년이 지난 후 “인터넷이 범죄를 조장하거나 범행을 실행하는 데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는 어느 정도 유연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포괄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 행정기관의 활동 근거조항들이 불명확하고 정부 비판을 제한할 우려가 있으므로 자율심의로 이관하라는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개선권고나 2011년 유엔 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의 권고가 무색해졌다.
- 공안기구, 인터넷 공론장에 개입하다
행정검열과 공안기구의 궁합은 더욱 환상적이다. 경찰과 국정원은 ‘북한게시물들’을 선정하고 방통심의위는 이것을 형식적으로 심의한 후 게시판 운영자에게 삭제나 폐쇄하라는 권고를 전달한다. 그런데 (게시자가 아니라) 게시판 운영자가 이 ‘권고’를 따르지 않을 경우 방송통신위원회가 자동적으로 ‘명령’을 내리는데 이 명령을 위반하면 운영자가 형사처벌받는다. 2011년 한총련 홈페이지가 이런 절차를 거쳐 폐쇄되었고 많은 사회단체 게시판이 오늘도 검열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공론장에 대한 국가의 검열과 개입은 행정기관과 정보·수사기관을 동원하여 게시물의 ‘불온성’을 검열하고 게시자에게 형사책임을 지우는 것이 대표적 방식이다. 그러나 2012년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드러난 인터넷 댓글 사건은 국가가 정보기관을 동원하여 인터넷 공론장에 보다 적극 개입해 왔음을 보여주었다.
전직 국정원장 원세훈씨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국정원은 2012년 9월부터 12월까지 트위터 계정 402개를 동원해 트윗 55,600여개를 날리고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최소 1977개의 인터넷 게시물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이것이 아직도 ‘추정’인 까닭은 국정원 요원들이 관여된 수많은 인터넷 계정들과 트윗, 게시물들이 신속히 삭제된 상황에서 형사재판이 증거로 인정한 것이 그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원세훈씨는 이 재판에서 ‘잊혀질 권리’를 적극 주장했었다). 국정원 요원들은 “종북 국회의원 대책 시급하다”는 등 통합진보당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종북 프레임’을 선동하는 내용의 게시물들을 인터넷에 도배했다. 시사인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원세훈 전 원장은 “인터넷 자체를 종북 좌파 세력이 다 잡고 있는데 전 직원이 인터넷을 청소한다는 자세로 그런 세력을 끌어내려야 한다”(2011년 10월21일)라며 “정부를 비방하는 개인 세력이 있다면 우리 국민이라도 북한과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원장의 지시 말씀을 실행한, 국정원 요원 김하영씨가 속한 5파트 책임자 이 아무개는 검찰에서 “원장님 지시 강조 말씀 가운데 국내 종북 세력은 문재인·안철수 후보 아니면 이정희 후보를 염두에 둔 것 같다”라고 진술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인터넷 공론장에서 공작할때 ‘종북’으로 엮은 것은 제도정치인들만이 아니었다. 국정원 요원들이 네이버 지식인에 올린 글에 따르면 “종북: 북한에 종속된 것,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 좌빨: 좌익 빨갱이의 줄임말입니다 종북,좌빨은 근본적으로 같은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구요. 이사람들은 지금 엄연히 대한민국에서 적화통일을 위해 우리 사회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북한에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일 뿐이예요. 김정일 개ㅅㄲ라고는 못하면서 탈북자들에게는 반역자라고 욕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라고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일베에는 “나는 사람들은 만날때 FTA..NLL..제주해군기지를 갖고 그 사람의 성향을 판단한다”는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국정원의 기준에 따르면 민선 진보 교육감과 학생인권조례도 종북이었다. 네이버 카페에 “학생폭력 조장하는 좌파 교육감이 학교, 학생을 망친다”고 비난하는 글을 올리고 네이트판에 “학생인권조례 再議요구, 학부모로서 환영!!!”이라고 위장하거나 “학생인권조례, 시행만은 막아야한다”고 선동하는 글을 썼다. 디시인사이드에는 “광우병시위선동 이면에는 북한정권과 종북좌파가 숨어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오늘의유머에서는 “좌빨들이 전교조 만들어서 청소년들에게 사상을 주입시킨다”고 주장했으며, 아고라 게시판에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파업이 “철없다”고 비난했다.
이런 주장들은 국정원이 직접 관리하는 트윗 계정을 통해 자가 복제되거나 ‘십알단’으로 알려진 조직적 배포자들, 혹은 우후죽순 생겨난 인터넷 언론 지면을 통해 널리 확산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독재정권 내내 공포정치를 조장했던 ‘빨갱이’라는 규정 만큼 흔하게 ‘종북’이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었으며 한국 정치는 또다시 색깔론 프레임에 갇히게 되었다. 이 프레임은 확실히 국정원이 주도한 것이었다.
- 카카오톡 공론장의 등장
최근 몇 년 새 디지털 공론장에 큰 변화가 찾아 왔다. 디지털과 떼어놓을 수 없는 우리의 삶과 인권에도 변화의 시기이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의 표현대로라면 이 변화는 ‘스마트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표현의 자유’는 일반에 공개된 공간에서의 인권이었다. 특히 국가에 대하여 정치적인 반대 의견을 공공연하게 밝힐 수 있는 권리에 대한 보호를 요구하였다. 반면 ‘프라이버시권’은 ‘사생활’, 즉 은밀한 비밀이나 남부끄러운 이야기를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로 이야기되어 왔다. 두 권리 사이는 통상 가깝지 않았고, ‘명예훼손'과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갈등 관계에서는 오히려 적대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경계가 스마트폰 속에서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수십 개의 카카오톡 단톡방은 매우 사적인 통신 공간이기도 하지만 때로 10명, 20명, 때로는 100명, 200명을 향해 발언하는 공론장이기도 하다. 선거운동 공간에서 카카오톡은 가장 막강한 공론장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하거나 성소수자를 비난하는 흑색선전도 카톡을 타고 흘렀다. 대통령에 대한 소문도 마찬가지다. 이제 국가 권력은 카카오톡 검열을 꿈꾼다.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묘연한 대통령의 행적을 둘러싼 논란이 일자 2014년 9월 18일 검찰은 카카오톡 대표를 참석시킨 채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갖고 ‘허위사실’ 엄단 대책을 발표했다. 사이버 공간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발표가 있자 조용한 사이버 망명이 시작되었다.
그때 3천명의 단톡방이 압수수색된 사건이 알려졌다. 정진우 전 노동당 부대표는 세월호 집회에서 연행·구속되면서 카카오톡이 압수수색되었는데, 이때 반일치 카톡 압수만으로도 모두 47개의 단톡방에서 2,368명의 개인정보와 대화내용이 수사당국에 제공되었다. 혐의사실이었던 세월호 집회와 무관한 철도, 유성, 밀양, 재능, 삼성 등 투쟁 현안을 논의하던 단톡방들이었다. 정진우씨는 기자회견을 열고 강력 항의했다. 사이버 망명에 불이 당겨졌다.
그 규모가 2백 만 명에 달했다는 망명객들은 한국 공권력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는 ‘카카오톡'에서 외국산 ‘텔레그램'으로 갈아탔다. 이 소동은 카카오톡이 메시지 보관기간을 대폭 축소하고 실시간 감청 협조 중단이라는 강수를 두고 나서야 진정되었다. 사이버 망명은 내 메신저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겠다는 국내 이용자들의 소리없는 행동이었고, 동시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강력한 요구이기도 했다.
스마트폰은 모든 이들에게 그렇게 소중한 ‘나만의 방'이자 ‘표현수단'이 되었다. 2014년 우연찮게도 유엔 인권최고대표와 미국의 연방 대법원에서 스마트폰에 대한 주요한 입장들이 발표되었다. 유엔 인권대표는 스마트폰과 같은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의 급속한 향상이 표현의 자유를 신장시키고 지구적 토론을 촉진시키며 민주주의 참여를 조성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기술이 정부, 기업, 개인의 감시 능력 또한 그 어느때보다 향상시켰다는 사실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휴대전화에 있는 디지털 정보의 수색은 담배갑, 지갑, 핸드백 등의 물품 수색보다 더 프라이버시 침해가 크다고 보았다. 이제 휴대전화는 지니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 드물고,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90% 이상의 시민들은 그들의 삶의 거의 모든 면에 관한 디지털기록을 자신들의 몸에 지니고 있다. 스마트폰 속의 정보에 대한 난도질은 인생 그 자체에 대한 난도질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프라이버시권은 부끄러운 사생활에 대한 권리로 머물러 있지 않다. 이미 프라이버시권은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문제로 변화해 왔다. 2005년 헌법재판소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하면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또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를 그 정보주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즉 정보주체가 개인정보의 공개와 이용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할 권리”라고 선언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스마트폰의 프라이버시는 디지털 공론장에서 내 의견이 전달될 범위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 사이버 국가 감시의 현주소
그러나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소중한 만큼 이를 엿보고 싶은 감시권력의 욕망 또한 자꾸만 커져가고 있다. 2015년 4월 18일 세월호 집회에서 100명의 시민들이 연행되었는데 40여 명의 휴대전화가 압수되었다. 경찰은 연행자들에게 휴대전화의 잠금을 해제하고, 사진첩을 까고, 카카오톡 대화방을 공개하고, 페이스북을 열어보라고 요구했다. 단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여했고, 연행된 후 묵비권을 행사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무렵 국정원은, 누군가의 스마트폰을 해킹하고 있었다.
상황이 더 나쁜 것은 이것이 지구적 상황이라는 사실이다. 이탈리아 해킹팀의 고객은 30 여개국 90여곳의 정보·수사기관을 아우르고 있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NSA의 인터넷망 감시를 폭로한 후 여러 나라 여러 정보기관의 감시 사실도 알려졌다. 오늘날 정보기관들은 경쟁적으로 인터넷망과 스마트폰을 해킹한다. 난도질 당하는 것은 그 인터넷망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감시로부터 탈출할 수 없는 세계 시민들의 프라이버시다. 2014년 유엔 반테러 보고관은 이런 지구적 감시로 “사생활이 사라졌다”고 개탄했다. 프라이버시의 파국을 향해 가는 지구적 감시 경쟁이 무기 경쟁과 꼭 같은 모습이다.
국정원 해킹 사건 이후 국회 상황은 더욱 갑갑하기 짝이 없다. 국내정치 개입관행이 있는 국가정보기관으로서는 유력한 감시 대상일 제1야당은 국민 앞에 이렇다할 개선책을 내놓지 못하였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국정원에 대한 국회 통제를 강화하자면서도 국정원 전횡의 근본적인 대책이라 할 조직 개편 논의는 배제하였다. 대통령 산하 NSC에 ‘사이버위기대응센터'를 설치하자는 제안은 엉뚱할 뿐 아니라 누구를 위한 어떤 사이버 안전 강화인지 규정하지 않았다. 사이버 안전을 위해 전국의 인터넷망과 태평양 인터넷망을 감시하는 결과를 낳지는 않기 바란다. 새누리당은 한술 더떠 이참에 휴대전화 감청을 적법하게 의무화하자고 공세를 펼친다. 지난 2013년 인터넷 댓글 사건 당시에도 양당이 주도하여 꾸린 국정원 개혁특위는 무력하게 마쳤다. 국정원법을 개정하여 국정원장은 국회 안건 심사에 “성실하게 자료를 제출하고 답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으나 그 순간에도 국정원은 아무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해킹하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해킹 사건에 대한 국회의 자료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을 끝내야 한다. 아귀처럼 사생활을 먹어치우는 이 시대 국가 감시를 멈출 수 있는 힘은 결국, 당사자들의 싸움에서 나올 수 밖에 없다. 내 스마트폰을 누군가 엿보는 것 같아 찜찜한가? 해킹하는 권력에 위축되지 말자. 분개하자. 내 메신저의 프라이버시는 이 시대 공론장의 문제이기도 하다. 카카오톡이 난도질 당한 상태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을까? 스마트폰의 정보인권을 포기하지 말자. 끊임없이 문제제기하자. 당사자는 모든 시민과 모든 노동자이다. 그 목소리에 화답할 이 역시 모든 시민과 모든 노동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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