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20. 13:01ㆍnews/사회
장대현(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국정원 대선 개입, 그리고 은폐 정국의 향방
검찰과 대통령, 누가 거짓말을 하는가?
지난 6월 14일 검찰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을 기소하며 공소장의 결론을 다음처럼 맺었다. “결국 피고인은 ... 직원들에게 사이버 공간에서 각종 정치 이슈와 선거에 관해 이들(대통령과 정부 여당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공격하게 함으로써 선거운동이 금지된 공무원이 그 지위를 이용해 낙선운동을 했다.” 국가의 최고 정보기관, 국가정보원이 그 최고 책임자의 엄중한 지시와 철저한 관리, 감독 하에 그 직원을 조직적으로 동원하여 야당 대통령 후보 낙선운동, 즉 여당 대통령 후보 당선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기억의 시계를 뒤로 돌려, 작년 12월 11일로 가보자. 그 날 민주당 당직자들은 국정원 여직원 김 모 씨의 오피스텔을 방문, 인터넷 댓글을 조작, 대선에 개입하는 의혹이 있다며 경찰에 즉각적인 현장 수사를 의뢰했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일 이틀 전이자, 공개되는 마지막 여론조사가 한창 진행되는 중, 매우 민감한 시점이었다.
만약 경찰이 신속, 공정하게 반응, 압수수색을 통해 증거를 확보하고 절차에 따라 객관적으로 수사를 전개하여 지난 6월 14일 검찰 공소장 수준의 수사결과를 대선 전에 발표했다면 선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12월 13일) 직전 일제히 공개된 조사에서 두 후보는 오치범위 내 박빙, 즉 초박빙을 보였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동안 불법선거운동 사무실 논란과 국정원 여직원의 여론조작 의혹 사건 등 각종 돌발 변수를 두고 양측의 공방이 치열하게 불붙었던 것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중앙일보 12월 18일 인용)라는 기사가 명백히 증명하는 것처럼 국정원 여직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은 선거 막판 가장 결정적인 변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기는커녕, 고의로 수사를 지연하고, 수사결과를 은폐했으며, 나아가 수사결과를 거꾸로 발표했다.
12월 16일, 대선을 이틀 앞둔 그 날 밤 11시 국립경찰은 느닷없이 “증거 없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한다. 마지막 텔레비전 토론에서 "국정원 여직원은 선거에 개입한 증거가 없으며, 민주당이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을 침해한 사건"이라며 “사실이 밝혀지면 문재인 후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맹렬공격한 지 불과 한 시간 만에 번쩍, 국립경찰이 박근혜 후보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번쩍, 고뇌하는 국민들의 머리에 최종적으로 신호가 들어가 박히는 순간이며 번쩍, 대선 결과를 알리는 화려한 전광판에 미리 불이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힘주어 말한다. “대선 때 국정원이 어떤 도움을 주지도,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 검찰 수사결과 발표 이후,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대학생들의 시국선언이 번지고, 그것이 촛불로 타오르자 겨우 한 마디, 그것도 국민 앞에 직접 나선 것도 아니고 서면으로 했다는 한 마디가 고작 그렇다. 대통령과 검찰, 거짓말을 하는 쪽은 과연 누구인가?
도움 받지 않았다면 도움 주지도 않는 법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먹어 봐야만 아는 것은 아니다. 냄새를 맡고도 알 수 있다. 수사권도 정보력도 없는 그냥 국민들이 저 높은 곳의 은밀한 이야기를 거짓말처럼 정확히 꿰는 것은 다 냄새가 나기 때문, 아니 저들이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남재준 원장은 이날 오전 ‘2급 비밀’로 돼있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을 ‘일반문서’로 전격 재분류한 뒤 오후에 이를 국회 정보위에 공개했다. 한 정부 소식통은 ‘마치 군사작전 하듯이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6월 25일 인용) 군사작전, 그것은 그 ‘속도’에 한정되는 말이 아니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대통령기록물’이다. 그것은 30년 간 열어볼 수 없고, 만약 그 이전에 그것을 열람하거나 공개하기 위해서는 국회 재적 2/3의 찬성, 즉 개헌 수준의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만 한다. 대통령기록물관리소에 있지 않고 국정원에 있으니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청와대 밖으로 나온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므로 경호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똑같은 언어도단, 즉 불법이다. 국정원이 그것을 2급 비밀로 분류한 자체가 불법이며, 그것을 다시 일반문서로 재분류, 공개한 것도 불법이다. 군사작전, 그것은 국회 재적 2/3의 동의라는, 개헌 수준의 국민적 합의를 깔아뭉개는 쿠데타, 총 없고 탱크 없는 쿠데타, 바로 그것이다.
쿠데타는 총과 탱크로 한다. 그러나 친위쿠데타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최고 권력자의 내밀한 허가 아래 권력을 동원, 헌법과 법률을 힘으로 유린하면 그것이 그거다. 국정원이 개헌 수준의 국민적 합의 없이는 절대 공개 불가한 정상회담 대화록을 감히 공개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의 허락이 선행되었기 때문이다. 아니라면 남재준 국정원장은 즉각 해임, 구속되어야 한다. 그런데 멀쩡하다. 이게 바로 냄새다.
국정원은 왜 이 시점에서 그처럼 무리한 거사를 감행해야만 했을까? 검찰 공소장을 통해 국정원의 조직적인 대선 개입이 드러나고, 전면적인 진상규명 요구가 확대되는 등 ‘국정원 개혁’이 불가피해지는 지금, 어떻게든 국면을 돌려놔야 했다. 절체절명, 국정원만 그런 것은 아니다. 국민의 입장에서도 선거에까지 개입, 그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괴물”이 되어버린 국정원을 전면 개혁해야만 하는 중대 순간을 맞은 것이다. 이 시점에서 대통령의 위치는 어디여야 할까? 국민 편에 서서 국정원을 개혁해야 할까, 국정원 편에 서서 국민을 억눌러야 할까?
그는 국정원 편에 섰다. 남북관계는 물론 정상 간 외교관계에 심각한 피해를 끼치는 그 위험천만한 것을 다 걸고 국정원 편에 섰다. 왜? 코를 찌르는 냄새가 말한다. 상상초월, 엄청난 과소비를 무릅쓰고 아낌없이, 그리고 거리낌도 없이 주는 이유는 그만큼 막대한 것을 받았기 때문 아닐까?
보라.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압력밥솥을
우리나라 선거는 언제나 수구보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첫째는 지역감정. 영호남 사람이 각자 자기 고향사람을 찍는 지역감정을 조장, 유지하므로 유리하다. 둘째는 분단악용. 이번 정상회담 회의록 공개로 드러난 것처럼 아무 근거도 없이 “NLL 포기” 발언을 유포하고, 진보정당을 ‘종북’으로 모는 등 분단을 상습 악용하므로 유리하다.
셋째는 언론. 이명박 손에서 더욱 망가진 언론은 작년에도 박근혜 후보에게 절대 편향이었으므로 역시 유리하다. 넷째는 권력. 이번에 다시 드러난 것처럼 국정원, 경찰, 검찰 등 권력기관을 총동원하므로 유리하다. 하여, 99% 서민, 즉 민중의 집권은 고사하고, 민주개혁진영의 권력 접근도 대단히 제한적이다.
이명박 5년. 민생, 민주, 평화 등 99% 서민의 삶을 총체적으로 망가뜨린 책임을 같이 져야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선거에 나서고, ‘억지로’ 이긴 것은 그래서, 압력밥솥을 더욱 달구는 일이며, 그들의 몰락을 재촉하는 역설이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밝혀졌는데도 정상회담 회의록으로 덮고, 국정조사로 대충 김을 빼면 또 어떻게 국면을 돌파할 수 있다고 믿는 박근혜 정부에 들려주고 싶다. 지난 1월 7일 울산 현대자동차 철탑 농성장을 향하는 ‘희망버스’에서 적어 통일뉴스에 게재한 나의 짧은 시다.
압력밥솥
압력밥솥에 밥을 해 본 사람은
안다
따닥따닥 소리가 나면
불을 끄고 김을 빼야지
더 이상 못 참겠다
터져버릴 것만 같다
울고불고하는데도 불을 더 때고
숨통을 더 막으면
밥솥은 벌개지고
밥솥은 시뻘개지고
밥솥은 터진다.
그러므로 믿지 말라
불을 줄이고 김을 빼도 모자랄 판에
화력을 더 올리고 틈새를 아예 밀봉하는 자들
선거를 지배도구로 다루는 자들
거짓과 술수로 이긴 자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무쇠폭탄 압력밥솥에
벌린 입을 들이대는 자들
그들이 선동하는 패배를 믿지 말라
그들이 강요하는 패배를 믿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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